공연관람후기

니벨룽의 반지 [05/09/24~29]

classicalboy 2007. 8. 20. 21:46
한국에서 니벨룽의 반지(이하 '반지')전막을 다 볼 수 있게 되다니!

제대하면서 바그너의 오페라, 그중에서도 반지의 마력에 심취했었다.
서극 '라인의 황금'의 음반을 우연히 집어들게 되면서 시작된 것 같다.
실은 이 음반이 나의 오페라 음반의 처음이다.
처음 라인의 황금을 들으면서 신적이고 SF적인 음악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바로바로 '발퀴레', '지크프리트', '신들의 황혼'까지 약 일주일의 텀을 두고
구입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4부작 전부를 모으는데, 그때 당시 가격으로 족히 20만원이 엄는 거액이었다.

대본을 인터넷에서 찾아 프린트 하고,
클리어파일을 준비하여 차곡차곡 넣어 음악과 동시에 따라 읽어갔다.
그렇게 시간이 빠를 수도 있다는게 놀라웠을 정도로...
지겨운 부분들도 상당히 많았지만,
그 거대한 울림에 압도당한 기억이 더 생생하다.
아마도 말러듣 이미 들었었기에
바그너도 가능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후에 '로엔그린', '파르지팔'(내가 주로 사용하는 ID가 되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탄호이저' 를 들었다.

나의 바그너 입문기는 이쯤 해두기로 하자..
이젠 한국 초연의 게르기예프와 키로프오페라의 반지 공연에 대한
간단한 감상을 적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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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극 '라인의 황금'
가장 짧지만 가장 길게 느껴지는 곡이다.
전 공연시간이 두시간 반이 넘지만, 1막으로 되어있기에 휴식시간이 없다. ^^;

거대한 네개의 석상으로 채워진 무대...
(이는 마지막인 신들의 황혼까지 동일하다.)
그만큼 연출과 무대장치에 대해서는 분쟁이 심했다... 안좋은 평이 많다...
나도 동의한다... 그 의도를 알수가 없었으므로!!!)

알베리히는 ET수준의 분장을 했고,
라인의 세 처녀를 잡을 수 없는 느린 걸음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알베리히를 불러준 '에뎀 우메로브' 음성은 그런대로 만족..

보탄을 노래한 '예프게니 키틴'은 실망이었다.
내심 솔티경 음반에서의 '한스 호터'를 기대해서일 수 있지만~~

파프너와 파졸트 형제의 거인 분장도 돌무덩이를 뒤집어 쓴 것처럼 형편없어 보였다.
움직임도 거의 없어서 많은 불만이 가득...

알베리히가 용과 객리로 변하는 장면에서도 거의 아이들 장난 수준처럼 처리되었고,
황금무더기를 쌓아올리는 장면도 쌓아올리는 동작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아니!! 그러면서 황금을 쌓는다고 어떻게 노래를 부를 수 있단 말인지!!!

그래도 반지를 실연으로 접했다는데 만족한 하루!!!


2. '발퀴레'
지글린데의 '믈라다 후도레이'와 지크문트의 '올레그 발라쇼브'는 그런대로 좋아보였다.
지글린데의 '믈라다 후도레이'는 보기 드물게 몸매가 좋아
지글린데 역에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크문트가 노퉁을 뽑아들기 전후로 제일 좋아하는 부분인데
이 부분은 만족스런 공연을 해주었다.
훈딩과 지크문트가 싸우는 장면은 좀 더 리얼한 연기를 해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너무 싸우는게 엉성해서... 한참 진지할 분위기인데 좀 웃겼다...

그리고 제일 기대되는 3막의 발퀴레들이 나오는 장면과
보탄의 이별 장면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날 브륀힐데 역의 '올가 사보바'는 탁월한 가창력을 보여주었다.
토요토호~~ 하는 부분이 어찌나 쩌렁쩌렁 하고 힘차던지!!!

보탄의 이별장면은
늙은 보탄역을 잘 소화해 준 '미하일 키트'로 인해 그래도 맘에 드는 부분이었다.
아!!! 사랑하는 딸을 벌하는 장면이 어찌 슬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
브륀힐데를 불꽃으로 둘러싸는 장면에서는 불꽃모양의 탕을 뒤집어 쓴 듯한
무용수들이 나와 연출한 것이 재미 있었다.


3. '지크프리트'
음반으로도 제일 지겨운 부분이 많은 '지크프리트'
그러나 역시 실연이 주는 즐거움으로 인해 지겹지 않았다.
이날의 지크프리트인 '리오니드 자코자예브'는
크고 넓은 움직임과 호탕한 목소리로 관객을 압도했다.

용으로 변한 파프너를 죽이는 연출이 어설픈게 큰 단점이었다.
용의 피를 맛봄으로 인해 새들의 말을 이해하고
잠자는 브륀힐데를 만난 지크프리트...
두려움을 모르던 용감한 청년이 여자로 인해 두려움을 배우다니...
여자란 존재는 참으로 요상허다....

브륀힐데와 사랑을 약속한 지크프리트... 감동적이긴 했지만
이날의 브륀힐데 역인 '라리사 고골레프스카야'의 목소리가 영 아니어서
큰 오점을 남겼다.


4. '신들의 황혼'
드디어 반지 4부작의 마지막이다.

하겐의 음모로 지크프리트는 죽음을 맞이하고
자신을 배신한 줄 알고 음모를 꾸민 브륀힐데는
모든 사실을 알고는 그의 시신과 함께, 그리고 신들과 함께 불속으로 잠든다...
황금은 다시 라인강의 세 처녀에게 돌아가며 대단원의 막은 내린다.

이날의 주인공은 단연 지크프리트가 되어야 하나,
'알렉세이 스테블리안코'의 목소리는 좋지 않았으며,
그의 몸매 또한 영웅 지크프리트를 나타내기에는 뚱뚱보에 배불뚝이 였다.
노래라도 잘했었으면 좋았을 것을...
때문에 이 날의 주인공은 강한 인상을 남겨준 하겐의 알렉세이 탄노비트스키'가 차지했다.
주인공인 지크프리트와 브륀힐데보다도 더 큰 환호성을 받았으니... >.<
그리고 발퀴레에서 브륀힐데를 맡았던 '올가 사보바'가 발트랑테로 나와
또다시 좋은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이렇게 신들은 몰락하고 평화는 다시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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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기예프의 연주는 힘차고 강하지 않았다.
세종문화회간의 오케스트라피트가 너무 작아서
많은 연주자들을 수용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하긴 내가 봐도 인원이 너무 적었다.
그러나 무난한 연주로 우리들을 즐겁게해준데 만족하련다.


좋은 경험을 한 공연이었다.
4일동안 나가기도 힘들었고,(회사에 반차내고 다녔다!)
게다가 혼자서 본다는 것이 이토록 외로운 것인지 또다시 체험했다.
2번의 쉬는 시간이 각각 무려 40분인데
말한 사람, 커피한잔 기울일 사람도 없던 것이 제일 힘들었다..
그저 혼자 자유시간과 우유한잔으로 저녁을 때우고
공연장 의자에 앉아서 팜플렛이나 뒤적인게 다였으니~

그러나 언제 또다시 반지 4부작을 볼 수 있겠는가?
즐거웠던 시간이다.
새로운 경험이었기도 하다.
실연을 보면서 애매하던 극의 내용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으니!!


아!! 이렇게나마 후기를 쓰는데 20여일의 시간이 흘렀다.
바로바로 쓰는 스타일인데,
너무 장문의 후기가 될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과
연주 시작되기 몇일 전부터 찾아 온 맘의 마픔으로 인해
이렇게 늦어지게 되었다.

아직 해결되지 않았지만,
조만간 좋은 일이 있을 것으로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