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예술

[펌] 노년 지휘자들이 사랑한 ‘브루크너 교향곡 9번’

classicalboy 2007. 11. 24. 14:20

노년 지휘자들이 사랑한 ‘브루크너 교향곡 9번’

조선일보|기사입력 2007-11-24 03:27

타계 7개월여 전, 빈 필하모닉과 브루크너의 교향곡 9번을 연주한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 /유로아츠 제공

[클래식 ABC]

서로에 대한 ‘예우’이자 ‘상호 불가침 조약’이었을까요. 자타가 공인하는 말러 전문가인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Bernstein)은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을, 브루크너 교향곡에 해박했던 지휘자 카라얀(Karajan)은 말러 전곡 음반을 각각 남기지 않았습니다.

베토벤과 브람스 등 독일 교향악의 전통을 잇는 것으로 평가받는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오스트리아 출신의 지휘자 카라얀이 놓쳤을 리 없지요. 마찬가지로 유대계 음악가였고 뉴욕 필하모닉을 이끌었던 대선배인 말러의 교향악을 유대계 지휘자 번스타인이 빼놓았을 리 없었습니다. 유럽과 미국, 베를린 필과 뉴욕 필하모닉으로 주요 활동 무대가 서로 달랐던 것처럼, 지휘자 카라얀과 번스타인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는 미덕(美德)을 보였습니다.

유럽의 명문 오케스트라와 종종 호흡을 맞췄던 번스타인이 1990년 2~3월 빈 필하모닉의 지휘봉을 마지막으로 잡으면서 골랐던 곡이 브루크너 최후의 미완성작인 교향곡 9번입니다. 최근 그 영상물(유로아츠)이 국내에 소개됐습니다.

타계하기 7개월여를 앞두고 있던 번스타인이 예의 온몸으로 노래하듯 열정적으로 지휘봉을 휘두르는 모습은 전성기 시절 그대로입니다. 빈 필하모닉의 연주도 따뜻하고 자연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어쩌면 브루크너의 교향곡 9번처럼 노(老) 지휘자에게 어울리는 곡도 없습니다. 독일의 명 지휘자 오이겐 요훔(Jochum)은 82세에 베를린 라디오 방송 교향악단을 지휘하며 바로 이 곡을 실황으로 연주합니다. 지휘대에 서지도 못하고 의자에 앉아 왼손에 침을 묻혀가며 한 장씩 악보를 넘기면서도, 오케스트라의 볼륨이 커질 때마다 어김없이 지휘자는 두 팔을 벌리며 포효할 것을 지시합니다. 연주를 마치고 의자에서 일어나는 노 지휘자의 모습은 다시 인자한 노인의 표정 그대로입니다.

타계를 불과 7개월 앞둔 2001년, 독일의 맹장 귄터 반트(Wand) 역시 부축을 받으며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옵니다. 때로는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도 북(北)독일 방송 교향악단을 지휘하며 역시 브루크너 최후의 교향곡인 9번을 연주합니다. 눈빛과 가벼운 손짓으로 지휘를 대신하는 노장의 동작 하나하나에 실린 무게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브루크너는 이 작품의 4악장을 쓰지 못한 채 타계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악장이 된 3악장 아다지오(Adagio)를 지휘하는 노장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굳이 4악장이 필요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악장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작곡가 브루크너처럼, 지휘자들에게도 이 곡은 ‘백조의 노래’입니다.

[김성현 기자 danp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