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두 오케스트라 '천국과 지옥'
한국일보 | 기사입력 2008.07.11 03:13
서울시향, 놀라운 성장에 美컬럼비아大서 성공사례 연구
KBS響은 상임지휘자 공석에 단원 불만… 정기공연 파행
국내 대표 오케스트라 두 곳의 위상과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두 가지 일이 최근 생겼다. 서울시향과 KBS교향악단 이야기다. 2005년 정명훈 영입과 재단법인 독립 이후 약진을 거듭한 서울시향은 미국 컬럼비아대 비즈니스스쿨에서 성공 사례로 다뤄진다.
번트 슈미트 컬럼비아대 교수와 박헌준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가 공동으로 연구했다. 2004년 말 이후 상임지휘자 공석 상태로 운영되고 있는 KBS교향악단은 단원들의 불만이 폭발, 9일 정기연주회 프로그램이 바뀌는 사태가 발생했다.
서울시향은 지난 3년간 연주횟수 2배, 관객수 8배, 자체 수익 2,400% 증가라는 놀라운 성장을 보였다. 박헌준 교수는 9일 "오랫동안 문제가 많았던 조직이 단기간 내에 살아났다는 점이 관심 사항이 됐다"면서 "비영리 조직의 비즈니스 사례로 오케스트라가 종종 다뤄지긴 하지만 국내 오케스트라가 국제적인 경영학 연구 대상이 된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22일 연세대 글로벌 MBA 과정에서 박 교수와 슈미트 교수가 공동으로 이 사례를 강의하며, 9월부터는 컬럼비아대 비즈니스스쿨에서 강의 자료로 사용된다. 체험 마케팅과 '빅 씽크 전략' 등으로 유명한 마케팅 전략가 슈미트 교수는 핀란드와 싱가포르에서도 서울시향의 사례를 소개했다.
박 교수는 "오케스트라는 공공성이 강한 조직이라 지원이 필수적이지만, 자체적인 수익 창출 구조를 갖고 있어야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고, 예술적 성과도 높일 수 있다"면서 "서울시향의 경우 기업 CEO 출신인 이팔성(현 우리금융지주 회장) 대표가 기업 경영의 스킬을 도입하고, 정명훈의 리더십이 또 다른 축이 돼 경영과 예술, 양쪽에서 성과를 내는 과정에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향은 예술감독 정명훈의 계약이 올해로 끝나지만 재계약을 사실상 확정짓고 안정적인 상태에서 장기적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반면 KBS교향악단은 KBS에 의해 사실상 방치된 상태다. 재정 악화를 이유로 상임지휘자를 4년째 비워뒀을 뿐 아니라 2005년 이후 단원 충원을 못해 객원 연주자 의존도가 높다. 악단 스스로도 정체성과 기량이 훼손됐음을 인정한다.
9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정기연주회에서 KBS교향악단은 예정된 베를리오즈 < 환상교향곡 > 대신 편성이 훨씬 작은 드보르자크 교향곡 8번을 연주했다. 공연 전에는 단원들이 관객에게 전단을 돌렸다.
"전체의 3분의 1에 가까운 30여명의 객원을 대동한 허울 좋은 연주로 애호가를 기만할 수 없어 객원 없이 연주가 가능한 곡으로 바꿨다"는 내용이었다.
단원 총회는 지난 주 단원 충원과 상임지휘자 선임, 처우 개선 등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객원 연주자 섭외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운영팀에 밝혔고, 결국 청중들은 베를리오즈에 대한 설명이 나와있는 책자를 보며 드보르자크의 음악을 들어야 했다.
이번 일은 3, 4년간 곪은 상처가 터져 발생했기에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당장 23, 24일 객원 연주자 없이는 불가능한 말러 교향곡 9번 연주가 잡혀있고, 하반기에도 대규모 편성 레퍼토리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정구성 KBS교향악단 운영부장은 "단원들을 이해하지만 청중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된다. 일단 다음 연주라도 정상적으로 하도록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경영진에 상임지휘자와 단원 충원을 지속적으로 건의하고 있지만 20억원에 가까운 예산이 필요한 일이라 수신료 인상 전까지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회사 측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오랫동안 한국 최고 오케스트라로 꼽혔던 KBS교향악단은 예산과 수입, 연주횟수, 관객수 등에서 서울시향에 1위 자리를 내 준 상태다.
음악 칼럼니스트 최은규씨는 "KBS교향악단은 뛰어난 개인 기량에도 불구하고 응집력이 크게 떨어졌다. 공영방송이 재정을 핑계로 가장 중요한 오케스트라 리더를 비워둔 것은 관객에게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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