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책

[펌] <사람들> 재불 서지학자 박병선 박사

classicalboy 2008. 6. 19. 09:49

<사람들> 재불 서지학자 박병선 박사

연합뉴스 | 기사입력 2008.06.19 07:31 | 최종수정 2008.06.19 09:24


"조선의궤 불어판 책 막바지 박차"

(성남=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프랑스인 99%는
병인양요를 모릅니다. 하물며 외규장각 도서는 더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는 재불 역사학자이자 서지학자인 박병선(80) 박사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6.25 전쟁 이후 파리 유학 여학생 1호, '
직지심경(직지심체요절)의 대모' 등등.

 
유학을 떠난 때가 1955년이니 프랑스 생활만 이미 반세기를 훌쩍 넘어섰다. 그래서 이제는 프랑스가 더 편하다고 한다. 하지만 잊을 수 없는 첫사랑처럼 한국은 항상 그의 마음 한 켠을 울컥이게 한다.

그런 박 박사가 지난달 20일 모국을 찾아왔다. 작년 프랑스 국영TV와의 인터뷰가 이번 귀국의 촉매제가 됐다고 한다.

"저를 취재한 방송사 부사장이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하라고 한국에서만 목소리를 높이면 누가 들어주나요'라고 하는 거예요. 사실 맞는 말이에요. 프랑스 사람들은 병인양요 자체를 모르잖아요. 그 사람들을 납득시킬만한 '프랑스어 기록'은 하나도 없어요."

박 박사는 이후 한국학중앙연구원에 프랑스어판 '조선의 의궤(儀軌)'를 내자고 제안했고, 한중연은 한국을 바로 알리자는 차원에서 이를 수용, 3천만원 정도의 '실탄'을 지원했다.

현재 작업은 막바지 단계에 왔다. 박 박사는 188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해군들의 일기, 함대장이 프랑스 정부에 보낸 공문, 규장각의 역사, 한국이 도서반환을 요구하는 이유 등에 대한 프랑스어판 설명 작업을 끝냈다. 당시 프랑스 함대가 거쳐간 지역을 표시하는 지도만 만들면 모든 작업은 마무리된다.

하지만 프랑스 함대원들이 남긴 지명은 프랑스어로 기록한 까닭에 그 위치를 밝혀내기가 쉽지가 않아 지도를 만드는 일이 더디다고 한다. 그래도 8월 이전까지는 책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박 박사는 말한다.

사실 박 박사라고 하면 직지심경이 먼저 떠오른다.
40여년 전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전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을 처음으로 발굴해 공개한 주인공인 까닭이다.

나아가 수년간의 연구 끝에 1979년에는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한 외규장각 의궤도서를 찾아내기도 했다.

평생을 사학에 몸담은 역사학도 답게 당시 기쁨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파리주재 한국 특파원들에게 규장각 도서의 존재를 알린 후 프랑스국립도서관은 그를 '왕따'했다. 도서관 사서로 프랑스 정부의 녹을 먹으면서 어떻게 프랑스를 배신을 할 수 있느냐는 얘기였다.

"도서관 실장과는 휴일에도 만날 정도로 규장각 사건 이전까지는 단짝이었지요. 하지만 그 사건 후 그쪽에서 아예 안면몰수를 하더군요. 게다가 도서관장이 '제발 그만둬 달라'고까지 했습니다. 결국 10년 넘게 근무한 도서관 생활을 접을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시련은 그를 강하게 만들었고, 계속해서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박씨는 이번 작업이 끝나는 대로 프랑스로 돌아가 한인들이 벌인 항일독립운동 관련 사료 정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그간 현지 신문기사와 각종 외교문서를 꼼꼼히 분석하고 1919년 무렵 프랑스에 건너가 독립운동을 벌인 김규식 선생 등의 행적을 더듬어 왔는데 이를 위해 자료가 보관된 외무부 고문서관에 자주 찾아갔다고 한다. 박 박사가 사는 파리에서 고문서관까지는 400여㎞. 힘든 여정이지만 빨리 이 연구에 매진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에 알려진 재불 독립운동 자료는 아주 미미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이와 관련되는 자료는 1만 쪽이 넘을 정도로 많습니다. 자료가 제대로 정리되면 한국 독립운동사가 바뀔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buff27@yna.co.kr
(끝)